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가볍게 즐길 킬링타임용 액션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는데,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 뒤에 실제 역사적 사건과 중세 유럽의 비극이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동화가 가린 것들: 원작과 역사적 배경
일반적으로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들을 위한 순수한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원작을 다시 파고들어 보니 그 이면은 상당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림 형제(Brothers Grimm)가 채록한 원전 설화에는 아이들을 살찌워 잡아먹으려는 마녀와, 그 마녀를 화덕에 밀어 넣어 불태워 죽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용이라고 하기엔 꽤 잔혹한 내용이죠.
여기서 그림 동화(Grimm's Fairy Tales)란, 19세기 독일의 언어학자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구전 민담을 수집·정리한 설화집을 말합니다. 이 설화집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당시 유럽 민중이 실제로 겪었던 공포와 생존의 기억을 반영한 구전 기록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동화의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면 영화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제로 유력한 역사적 사례 중 하나로는 17세기 독일의 카타리나 슈라데린(Katharina Schraderin) 사건이 있습니다. 뛰어난 제과 기술로 유명했던 그녀는 경쟁자의 시기를 받아 마녀로 몰렸고, 결국 살해된 뒤 시신이 화덕에 유기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마녀가 화덕에 구워졌다는 동화적 장치로 변형되었다는 해석이 현재까지도 지배적입니다.
또한 동화의 핵심 설정인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14세기 유럽 대기근(Great Famine)의 참혹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대기근이란 1315년부터 1322년까지 유럽 전역을 강타한 극심한 식량 부족 사태로, 당시 유럽 인구의 10~25%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자녀를 숲에 유기하거나 심지어 식인이 자행되었다는 역사 기록이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과자 집의 달콤한 환상이 얼마나 쓴 현실을 가리고 있었는지가 느껴집니다.
영화가 택한 방향: 장르적 쾌감과 그 한계
영화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2013)은 원작의 잔혹성을 오히려 장르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동화 속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마녀 사냥꾼(Witch Hunter)이라는 직업 전문가로 거듭난다는 설정 자체가 꽤 매력적입니다. 마녀 사냥꾼이란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 지목된 인물을 추적하고 처단하는 역할을 맡았던 직업 또는 집단을 가리키며, 역사 속에서는 실제로 종교재판소와 결탁한 형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른바 고어(Gore) 연출의 수위였습니다. 고어란 영화에서 신체 훼손이나 잔혹한 폭력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연출 기법으로,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마녀들의 사지가 찢겨나가거나 폭발하는 장면을 꽤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원작 동화의 어두운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분명히 성공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에 대해 "원작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보면 조금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실제로 영화가 선택한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관 몰입도를 해치는 현대적 무기와 어투의 혼재
- 캐릭터의 심리 묘사보다 액션 스펙터클에 집중된 편집
- 예측 가능한 권선징악 구조와 단순화된 반전
일반적으로 원작 재해석 영화는 원전의 주제 의식을 현대적으로 재맥락 화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는 장르적 오락성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게 나쁜 선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원작이 품고 있던 사회적 공포, 즉 기근과 마녀사냥으로 이어진 집단 히스테리라는 묵직한 주제가 액션의 화염 속에 증발해 버린 건 아쉬운 지점입니다.
흥미롭게도 중세 유럽의 마녀재판(Witch Trial) 기록을 보면 실제 마녀 사냥의 피해자 중 상당수는 카타리나 슈라데린처럼 시기와 이해관계의 충돌이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마녀재판이란 주로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서 마녀로 고발된 인물을 종교·사법적으로 처형한 제도를 말하며, 독일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전역에서 약 4만~6만 명이 이 과정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산됩니다(출처: 막스 플랑크 유럽법사 연구소).
지금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솔직히 이 영화를 오락 영화로 보기에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제레미 레너와 젬마 아터튼의 남매 케미스트리, 빠른 편집, 통쾌한 마녀 처치 장면은 분명 제값을 합니다. 다만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할 때 항상 덧붙이는 말이 있는데, "이걸 보기 전에 원작 동화의 역사적 배경을 한 번쯤 찾아보면 훨씬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동화는 때때로 현실의 가장 잔혹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 됩니다. 과자 집의 달콤한 외벽 뒤에 기근과 살인과 집단 공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포가 지금도 형태만 바꿔 반복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물 이상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음에도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작의 역사 맥락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그림 형제 원전 설화나 중세 유럽 마녀재판 관련 자료를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한 편이 훨씬 두껍게 읽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