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2008년 개봉한 영화 원티드를 다시 보면서 저는 그 질문이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상사에게 치이고,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매일 불안 발작에 시달리던 웨슬리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극한의 환경이 만들어낸 캐릭터, 웨슬리는 왜 그렇게 됐을까
웨슬리는 처음부터 무기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매일 구박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 여자친구가 절친과 바람을 피우고 있어도 딱히 따지지 못합니다. 심각한 불안 발작, 즉 패닉 어택(Panic Attack)을 달고 살았죠. 패닉 어택이란 특별한 이유 없이 극도의 공포와 심박 급상승, 호흡 곤란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심리적 증상으로,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었을 때 나타나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영화가 설정을 과장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방식으로 대우받았는지가 그 사람의 반응 방식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걸 주변에서 실제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억눌려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폭발하지 못하죠. 물론 환경이 전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나쁜 환경에서 자라도 반듯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건 제가 직접 봐온 일이기도 합니다.
사회 환경과 심리 발달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습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 성인기 행동 패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인 ACEs(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이 많을수록 성인기에 정서 조절 장애나 충동 조절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ACEs란 학대, 방임, 가정 내 폭력 등 아동기에 겪는 부정적 사건들을 수치화한 지표입니다(출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
웨슬리가 비밀 조직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각성해 가는 과정은, 억눌렸던 잠재력이 특정 자극을 만났을 때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혔습니다.
능력이 생겼을 때 사람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훈련을 통해 능력을 갖추게 된 웨슬리는 달라집니다. 처음으로 상사에게 쌍욕을 내뱉고, 자신을 배신한 절친에게 키보드로 복수하는 장면은 영화적 쾌감이지만,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힘이 생겼을 때 사람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거든요.
제가 경험적으로 느낀 건 이렇습니다. 원래 착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조직에서 직급이 조금만 올라가도 돌변하는 경우를 꽤 봤습니다. 반대로 거칠어 보이던 사람이 힘이 생겼는데도 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힘 자체보다 그 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결과를 가르는 것 같습니다.
원티드에서 이 부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슬론과 크로스의 대비입니다. 같은 조직에 있었지만 한 명은 조직의 규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왜곡했고, 다른 한 명은 그것에 저항하다 혼자가 됐습니다. 영화에서 조직이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가 운명의 방직기(Loom of Fate)인데, 이는 직물의 실 패턴으로 암살 대상을 지정하는 일종의 운명론적 알고리즘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죽이는 건 운명이 정한 것"이라는 명분이죠. 이 설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절대적인 명분이 주어졌을 때 사람이 얼마나 쉽게 윤리적 판단을 멈추는지를 꼬집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남보다 신체 어느 부분이 유독 발달해 있거나, 특정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스포츠 심리학에서 자주 다루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이론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 믿음이 높을수록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APA).
웨슬리가 훈련을 통해 달라진 것도 결국 이 자기 효능감의 변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힘을 갖게 된 사람이 보이는 반응'을 크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슬로형: 힘을 얻은 뒤 시스템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고 명분으로 포장하는 유형
- 크로스형: 진실을 알게 된 뒤 혼자서라도 저항하는 유형
- 웨슬리형: 처음엔 시스템에 편입되지만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유형
그래서,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 직접적입니다. 웨슬리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래서 넌 지금 뭘 하고 있냐"는 뉘앙스의 대사를 던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락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찔릴 줄은 몰랐거든요.
저는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지금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흘러가고 있는가"를 묻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 질문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편합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원티드는 그 트리거(Trigger)가 되어줄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트리거란 특정 반응이나 행동을 유발하는 촉발 자극을 뜻합니다. 한 번 직접 보시고,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느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