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은 정말 자신이 만든 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영화 <오펜하이머>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핵폭탄을 만든 과학자 한 명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영웅담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괴물 앞에서 무너지는 한 인간의 초상이었으니까요.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오펜하이머의 죄의식
영화는 도입부에서 바로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꺼냅니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이후 코카서스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이걸 영화 맨 앞에 배치했을 때,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미 답을 준 셈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단순한 문학적 장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였습니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실험, 즉 최초의 핵폭탄 실험 성공 직후 읊은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의 구절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말도 맥락 없이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바가바드 기타란 고대 힌두교 경전으로, 전쟁의 의무와 인간의 도덕적 고뇌를 다룬 텍스트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경전을 읽기 위해 산스크리트어를 직접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대사가 단순한 죄책감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경전 속 크리슈나는 아르주나 왕자에게 "결과와 의무를 분리하라"라고 말합니다. 오펜하이머는 그걸 자기 식대로 해석했습니다. 원폭이 어떤 결과를 낳든, 맨해튼 프로젝트 리더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방식으로요. 이 해석이 오히려 이후 그가 얼마나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지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고 저는 봅니다.
오펜하이머가 보안 청문회에 스스로 나가기로 결심한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냥 떠나라"라고 조언했지만 오피는 거부합니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의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기 고문의 방식이었습니다.
도덕적 딜레마: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서 끝나는가
이 지점에서 저는 영화 밖의 이야기를 자꾸 떠올렸습니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의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사용한 에니그마(Enigma)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전쟁 기간을 최소 2년 단축하고 1,4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에니그마란 당시 경우의 수가 10억의 100억 배를 넘는 수준의 암호 체계로, 사실상 인간의 두뇌만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 기계였습니다. 튜링은 "기계를 이기려면 더 강력한 기계가 필요하다"며 봄브(Bombe)라는 암호 해독 장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펜하이머와 튜링,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자꾸 겹쳐 보이는 이유는 결말 때문입니다. 국가가 필요할 때는 최대한 활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거나 불편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구조가 동일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고 군비 축소를 주장하다 매카시즘(McCarthyism)의 표적이 됩니다. 매카시즘이란 1950년대 미국에서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주도한 반공산주의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근거 없는 고발로 공직을 잃은 사건입니다.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1954년 41세의 나이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저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 단순한 철학적 토론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놀란 감독도 이 점을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찌릅니다. 오펜하이머가 원폭 투하 이후 트루먼에게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라고 말하자, 트루먼은 그를 '울보'라며 내쫓습니다. 권력은 책임을 나누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 아이러니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나치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실제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투하는 강행됐습니다.
- 원폭 개발을 이끈 과학자들조차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이 투하되자 분노를 표했습니다.
- 1995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미 육군은 추가로 최대 18발의 원폭 투하 계획까지 세웠습니다(출처: 워싱턴 포스트 아카이브).
튜링과 오펜하이머, 두 비극의 공통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오펜하이머를 주로 원폭의 설계자로만 인식했는데, 그가 블랙홀의 존재를 최초로 이론화한 물리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중력 붕괴(Gravitational Collapse)란 별을 지탱하는 중성자의 압력이 한계를 초과할 때 모든 물질이 무한히 한 점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오펜하이머는 1939년에 이 이론을 발표했지만, 당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90년대에야 실험적 증거가 발견됐습니다.
노벨상은 생존 인물에게만 수여됩니다. 만약 오펜하이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세상은 그를 핵폭탄의 아버지가 아닌 블랙홀 이론의 선구자로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튜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13년 영국 왕실이 뒤늦게 사면령을 내렸고, 2021년에는 영국 50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이 실렸습니다(출처: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제가 이 두 인물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것은 국가와 과학의 관계입니다. 국가는 위기 때 과학자를 도구로 사용하고, 그 과학자가 윤리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본-오펜하이머 근사(Born-Oppenheimer Approximation)라는 업적도 있습니다. 이는 원자핵과 전자의 운동을 분리하여 계산을 단순화하는 양자역학 방법론으로, 오늘날 화학·물리학 계산의 기반으로 쓰이는 중요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성취보다, 결국 세상은 오펜하이머를 '핵폭탄을 만든 사람'으로 먼저 기억합니다.
2022년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 취소가 편견에 근거한 불공정한 처사였음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공직 추방으로부터 68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역사는 결국 맞게 기록됩니다. 다만 항상 너무 늦게 도착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AI, 유전공학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강력한 기술을 마주한 현대 과학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술을 만든 사람의 책임은 어디서 끝나는지, 아직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원작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담지 못한 오펜하이머의 내면이 훨씬 더 깊게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