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꽤 오래 미뤄봤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무겁고 피곤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1987년 1월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이렇게까지 깊이 박힐 줄은 몰랐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조사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쇼크사(shock death), 즉 심리적·신체적 충격에 의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의사가 이미 사망 상태임을 확인했고, 부검의 황적준 박사가 내린 사인은 달랐습니다.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여기서 경부 압박이란 목 부위를 외부에서 강하게 눌러 기도와 혈관을 차단하는 행위를 말하며, 이는 물고문 과정에서 욕조 턱에 목이 눌린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심장마비가 아니라 명백한 고문치사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저는 가장 소름 돋았습니다. 거짓말의 구조 자체가 너무 대담했거든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는 당시에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언론 통제 속에서 그 거짓말이 공식 발표로 유통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영화는 그 거짓말이 무너지는 과정을 여러 인물의 손을 거쳐 밀도 있게 따라갑니다.
당시 정권이 동원한 수단 중 하나가 보도 지침이었습니다. 보도 지침이란 정부가 언론사에 특정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거나 보도하지 말아야 할지를 직접 하달하던 검열 시스템을 말합니다. 민주화 이후 이 지침의 존재 자체가 폭로되면서 당시 언론 통제의 실상이 드러났습니다(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영화가 잘 보여주는 것은, 이 은폐 구조에 균열을 낸 것이 거대한 조직이나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원칙을 버리지 않은 검사, 화장실에서 짧게 털어놓은 의사의 한 마디, 새벽에 긴급회의를 연 기자들. 저는 그 장면들이 특별히 오래 남았습니다.
릴레이 서사 —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이 영화가 단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용어로 앙상블 캐스트(ensemble cast)라고 부르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앙상블 캐스트란 특정 주인공 없이 여러 인물이 동등하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하며, 각 인물이 바통을 넘기듯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검사에서 교도관으로, 교도관에서 기자로, 기자에서 사제단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평범한 대학 신입생 연희에게까지. 이 릴레이 구조 덕분에 영화는 특정 누군가의 영웅담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은 사실 극 중 후반부까지 정체가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운동권 선배로서 연희 곁에서 등장하고, 한쪽 신발을 잃은 채 걷는 장면에서 다른 쪽 신발을 건네주는 행동이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도록 신발을 건네는 것, 그게 연희의 변화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런 앙상블 구조의 영화는 관객에게 더 큰 숙제를 남깁니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인물마다 반복되니까요. 저도 최 검사 장면에서는 원칙을 지켰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교도관 장면에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연희 캐릭터가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기 위한 도구로 다소 기능적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있고, 실제 항쟁 현장에서 여성들이 했던 역할에 비해 극 중 여성 서사의 비중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그 아쉬움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1987년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습니다.
6월 항쟁의 핵심 전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 1987년 1월 15일: 경찰, '쇼크사'로 허위 발표
- 1987년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경관 은폐 사실 폭로
-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쓰러짐
- 1987년 6월 10일~29일: 6·10 민주항쟁 전국 확산
-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 6·29 민주화 선언 발표
이 사건들이 한 달이 아니라 반년에 걸쳐 쌓이고 터졌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생생하게 실감됩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지금 우리에게 이 영화가 남기는 것
직접 겪어보니, 역사 영화를 보는 감각은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6월 항쟁은 교과서 안의 활자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시절 대학가 근처에서 일상을 살았을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당시 대학생이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루탄 연기 속에서 이름 모를 상점 주인이 셔터를 반쯤 올려 "이쪽으로 들어와"라고 손짓하던 장면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고 합니다. 이념도 조직도 아닌, 그냥 눈앞의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본능이 그 시대를 움직인 동력 중 하나였다는 거죠.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영화의 연희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란 억눌렸던 감정이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되는 정화 작용을 말합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감정은 그냥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뭔가 빚을 진 것 같은 묵직한 감각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영화 1987은 2017년 12월 27일 개봉해 723만 관객을 동원했고, 지금도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오래 미뤘다가 뒤늦게 본 것을 후회했던 것처럼,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한 번은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묵묵히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