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가 기대하는 '남자다움'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온 사람이 주변에 한 명쯤은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진 감독의 2014년 작 영화 하이힐이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니라 진짜 사람의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누아르라는 포장지 안에 담긴 성 정체성의 서사
일반적으로 한국 누아르 영화라고 하면 남성적 폭력성, 조직 간 갈등, 강렬한 액션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기대감으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안의 지욱(차승원 분)은 그런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지욱은 강력계 형사입니다. 범죄자들 사이에서 '독종'이라 불릴 만큼 거칠고 강인한 인물이죠. 그런데 그 안에 여성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공존합니다. 장진 감독은 이 대비를 미장센(mise-en-scène)으로 풀어냅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소품, 배우의 동선까지 포괄하는 영화 연출 언어를 뜻합니다. 차갑고 어두운 범죄 현장과, 지욱이 혼자 거울 앞에 서는 장면의 온도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제가 직접 두 번 돌려봤는데, 그 대비가 처음보다 두 번째에 더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퀴어 시네마(Queer Cinema)라는 분류를 붙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분류가 다 담지 못한다고 봅니다. 퀴어 시네마란 성소수자의 경험과 정체성을 중심에 두는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하지만 하이힐이 말하는 건 그 이상입니다. "당신은 지금 진짜 자신으로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모든 관객에게 던집니다.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억압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영화입니다. 소수자를 볼거리로 소비하는 영화들과 달리, 차승원의 절제된 연기는 캐릭터를 구경거리가 아닌 공감의 대상으로 만들어줍니다. 특히 지욱이 혼자 화장을 지우는 장면에서, 대사 한 마디 없이도 평생 쌓아온 '가짜 자신'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이힐이 한국 영화사에서 전위적인 시도로 평가받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통 누아르 장르와 트랜스젠더 서사를 결합한 국내 최초 시도
- 소수자를 희화화하지 않고 비극의 주체로 정면에 배치
- 차승원이라는 마초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해 '남성성'의 역설을 극대화
장르의 불협화음과 여성성 표현의 한계, 솔직한 평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흥행 성적이나 평론의 온도가 생각보다 낮다는 사실이요. 저는 이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어야 한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면 장르적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자주 지적되는 문제가 서사 구조의 불균형입니다. 영화 중반 이후,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과 액션 씬이 과도하게 길어지면서 정작 지욱의 내면 서사, 즉 내러티브(narrative)의 중심축이 흐려집니다. 여기서 내러티브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흐름 전체를 의미합니다. 관객이 공감해야 할 감정의 흐름이 끊기면, 아무리 강렬한 장면도 표면적인 자극에 그치고 맙니다. 제 경험상 이 지점에서 몰입이 한 번 끊겼고, 그 이후로는 영화를 좀 거리를 두고 보게 됐습니다.
또 하나는 여성성(femininity)의 표현 방식입니다. 여성성이란 사회가 '여성적'이라 규정하는 특성이나 행동 양식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 지욱이 갈망하는 여성의 모습은 붉은 립스틱, 하이힐, 드레스 같은 시각적 기호에 크게 의존합니다. 이것이 지욱의 억눌린 욕망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성을 외모와 패션으로 환원하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화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타당합니다.
실제로 2010년대 중반 국내 미디어의 성소수자 재현 방식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시각적 상징에 의존하는 표현이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한국 미디어 내 성소수자 재현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 온 학계에서도 이 영화를 논의의 사례로 자주 인용합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실패한 시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2014년이라는 시점에,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서 이 소재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맥락이 있습니다. 당시 국내 영화 시장에서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상업 영화 편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 지형 위에서 장진 감독이 시도한 것은, 비록 완성도 면에서 울퉁불퉁하더라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고 봅니다.
강력계 형사 A 씨의 이야기처럼, 영화 밖 현실에서도 수십 년을 '가짜 자신'으로 살다가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꺼내 드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화려한 총격전도 없고, 음악도 없는 그 고백의 순간이 하이힐의 어떤 장면보다 치열한 전쟁이라는 것을,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하이힐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은 영화입니다. 그 질문만으로도 한 번쯤 찾아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누아르라는 장르에 익숙한 분이라면, 그 틀이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는지를 의식하면서 보시면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