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길복순>을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사마귀>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았습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spin-off)니까, 전작의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드는 감정은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섞인 묘한 찝찝함이었습니다.
킬러 세계관과 스핀오프의 구조
<사마귀>는 2023년 3월 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전도연 주연의 <길복순>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스핀오프란 기존 작품의 세계관이나 등장인물 일부를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존 윅> 시리즈와 비슷하게, 살인을 하나의 산업으로 묘사한 세계관인데 회사에 소속된 킬러가 아니면 무직자로 분류되어 각종 제약을 받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이 세계관의 최고 권력자는 설경구가 연기한 차민규로, MK라는 업계 원톱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정한 세 가지 규칙 가운데 핵심은 회사가 허가한 작품, 즉 살인 의뢰만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복순>에서는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이 이 세 번째 규칙을 어겨 표적이 되었고, <사마귀>에서는 주인공 사마귀(이 하우)가 동일한 이유로 위기에 처합니다.
제가 이 세계관에서 주목한 지점은 살인 비즈니스를 연예계 시스템에 빗댄 메타포(metaphor)입니다. 메타포란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빗대어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 기법인데, 대형 기획사 소속이어야 성공할 수 있는 아이돌 시장처럼 MK 같은 대형 회사 소속이어야 굵직한 일거리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상당히 영리한 설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액션 연출의 변화, 무협화(武俠化)
<사마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액션 스타일입니다. 감독이 교체되면서 연출 방향이 확연히 달라졌는데, 제가 직접 두 편을 연달아 보면서 그 차이를 꽤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길복순>이 주변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활용하는 즉흥적이고 거친 액션이었다면, <사마귀>는 캐릭터마다 시그니처 무기(signature weapon)가 있고 복잡한 합(合)을 주고받는 방식입니다.
시그니처 무기란 특정 인물을 상징하는 고유한 무기를 의미합니다. 주인공 사마귀는 양손에 낫을 들고 싸우는데, 이 낫이 사마귀라는 별명의 유래가 됩니다. 최종 보스 도고의 무기는 끝이 뾰족한 톤파(tonfa) 형태로, 찌르는 공격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임시완이 전도연보다 피지컬적으로 더 다양한 동작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액션 자체의 강도는 분명히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무협화 방향이 장르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견자단 같은 홍콩 무협 액션의 완성도와 비교하면 하위 호환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달라진 건 알겠는데 그게 <길복순>보다 이 영화를 더 나은 작품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사마귀>의 액션을 평가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그니처 무기 중심의 캐릭터 구분: 시각적으로 인물을 기억하기 좋음
- 복잡한 합 구성: 무협 영화의 느낌을 주지만 유사 장르 대비 완성도는 아쉬움
- 임시완의 피지컬: 강렬한 신체 액션 가능하나 중반부 사마귀 방치 구간이 길어 힘이 분산됨
여미세(女美勢) 트롤 서사의 반복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길복순>과 <사마귀> 두 작품 모두, 세계관 최강자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를 봐주는 남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것을 저는 여미세(女美勢) 트롤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여미세 트롤이란 여성 캐릭터가 실력으로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 남성이 의도적으로 져 주거나 감정적 약점 때문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차민규가 길복순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길복순에게 당하는 <길복순>의 결말이 그랬고, <사마귀>에서 사마귀가 신제이와 대련할 때 봐주면서 지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관은 여성과 남성을 대등한 무력으로 묘사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이런 장치를 끼워 넣는다는 게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어도 두 작품에서 반복되니 패턴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젠더 서사는 꽤 민감한 주제이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여성 중심 액션물의 서사 완성도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가 느끼기엔 이 시리즈가 무협지라는 틀에 기대어 도덕적 논쟁을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는데, 그게 오히려 더 구차한 변명처럼 읽히더라고요.
스토리 전개의 아쉬움과 세계관의 한계
<사마귀>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인데도 사마귀가 중반부까지 거의 방치된다는 점입니다. 내용의 상당 부분이 신제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사마귀는 염세적인 태도로 구석에 박혀 있는 시간이 깁니다. 주인공의 비중과 서사적 무게가 불균형하다 보니 전체적인 리듬이 늘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3파전 구도도 개연성(蓋然性) 측면에서 아쉬웠습니다. 개연성이란 사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논리적 필연성을 의미하는데, 사마귀가 독고에게 먼저 다리 부상을 당하는 장면이 신제이가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걸 신경 쓰다가 방심해서 생긴 일이라는 처리 방식이 다소 어색했습니다. 신제이를 향한 사마귀의 감정이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설정은 이해가 되지만, 연출 방식이 조금 어설프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미디어 서사 연구 분야에서는 캐릭터의 결정적 약점이 감정적 요소에 집중될 때 서사 구조의 긴장감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제가 직접 두 편을 비교해 보니 이 지적이 <사마귀>에 꽤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관 자체가 자본주의 경쟁 구조의 알레고리(allegory)로 읽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적인 이야기 이면에 다른 의미를 담는 표현 방식으로, 살인 비즈니스를 통해 현실의 기업 생태계나 을의 처지를 비틀어 보여준다는 해석입니다. 그 의도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걸 이해하고 봐도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는 세계관을 두 편 연속으로 소비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길복순>은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어도 주인공에 대한 집중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사마귀>는 액션의 완성도를 높이려다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을 잃은 느낌입니다. 이 세계관이 시리즈로 계속 이어진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서사에 더 집중하고 여미세 트롤 같은 반복 패턴을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마귀>는 분명히 볼 만한 액션 장면들이 있고, 세계관 자체의 흡인력도 어느 정도 유지됩니다. 하지만 같은 세계관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다면 <길복순>을 먼저 보고, <사마귀>는 기대치를 조금 낮춰서 접근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