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아 유기 건수는 2022년 기준 국내에서 연간 수백 건에 달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그냥 숫자로만 읽혔습니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개인을 보고 나서야 그 숫자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베이비박스가 만든 기묘한 동행, 그리고 팩트
영화 브로커은 베이비박스(baby box)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베이비박스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신생아를 익명으로 맡길 수 있도록 설치된 함을 말합니다. 국내에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것이 대표적으로, 2009년 설치 이후 수천 명의 아기가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베이비박스는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동시에 영아 사망을 막는 최후의 보루라는 옹호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막연히 전자 쪽에 가까운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며 그 판단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상현과 동수는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를 몰래 빼내어 양부모에게 중개하는 중개인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중개인(broker)란 거래 당사자 사이에서 중개 수수료를 받고 연결을 주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이 개념이 아동 불법 입양 알선이라는 범죄 행위와 결합됩니다. 그런데 영화가 이 인물들을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제가 가장 먼저 느낀 이질감이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입양 시스템 안에서도 제도적 사각지대는 존재합니다.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더라도 친부모가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꺼리는 부모들이 쪽지만 남기고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영화 속 동수가 "쪽지를 남기면 교회 입양 리스트에서 빠지고 100% 보육 시설로 보내진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이 제도적 허점을 꽤 정확하게 짚어낸 부분이었습니다.
영화가 팩트로서 제대로 전달하는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베이비박스에 쪽지(연락처 포함)를 남기면 공식 입양 대기 리스트에서 제외될 수 있음
- 공식 루트가 막힌 아기는 보육 시설로 직행하며 입양 가능성이 크게 줄어듦
- 이 제도적 공백이 불법 입양 중개인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냄
제가 직접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며 확인한 내용인데, 영화가 이 구조를 꽤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뜻한 시선이 오히려 불편했던 이유, 온정주의의 경계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은 이른바 휴머니즘적 시선(humanistic perspective)이라 불립니다. 여기서 휴머니즘적 시선이란 사회적 약자나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인물들에게도 인간적 온기와 이해를 보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중개인뿐 아니라 어느 가족, 아무도 모른다 등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흔들면서도, 동시에 불편함을 남겼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온기 있는 묘사는 관객의 감정을 부드럽게 포획하는 동시에, 정작 비판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범죄를 다루는 영화는 가해자를 단죄하거나 적어도 그 행위의 심각성을 관객에게 분명히 환기시킵니다. 하지만 중개인에서 상현과 동수는 여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선한 사람으로 읽히게 됩니다. 저도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인물들이 그냥 좋아지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불법 입양 중개 과정에서 아동이 적절한 사전 적합성 평가(pre-adoption suitability assessment) 없이 양부모에게 인계될 경우, 학대 및 파양 위험이 공식 입양 경로 대비 현저히 높아집니다(출처: 아동권리보장원). 여기서 사전 적합성 평가란 입양 희망자가 아동을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는지를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영화 속 첫 번째 거래 장면에서 구매자가 아기의 눈, 눈썹까지 들여다보며 품평하는 장면은 바로 이 절차가 생략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의 단면을 날것으로 보여줍니다. 그 장면만큼은 고레에다 감독이 온기를 거두고 냉정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중개인이 아쉬운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제도적 모순을 정확하게 건드리면서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시스템 개혁이 아닌 인물들의 선한 의지와 우연한 연대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대안가족(alternative family)이라는 개념, 즉 혈연이나 법적 테두리 밖에서 선택과 유대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가족 형태가 영화의 정서적 결론으로 제시되는데, 이것이 감동적인 동시에 현실 문제 해결로는 너무 가볍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 브로커은 2022년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경쟁 부문으로 초청되어,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 감독으로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만든 한국어 영화라는 점도 이례적이었고, 기획 단계부터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7년 가까이 준비했다는 뒷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개인을 보고 난 뒤, 저는 베이비박스를 단순히 찬반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불충분한 시각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도의 허점이 사람을 어떤 선택으로 내모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영화가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는 동의하지만, 답을 내놓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보적입니다. 베이비박스 관련 제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보건복지부의 입양 정책 관련 공시 자료를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한 편보다 훨씬 복잡한 현실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7 H57 Ie4 t5 Eg? si=Z581 QL0 jPmz9 UY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