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글라스>를 봤을 때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실망작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다가 정신병원에서 말싸움만 하다 끝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를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3부작이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자아와 사회 구조를 다룬 심리극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샤말란 감독이 20년에 걸쳐 심어놓은 복선, 한 번쯤 직접 따라가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아각성 — "나는 평범하다"는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비드 던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왜 저렇게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실의 우리라고 다를까요?
데이비드는 과거 교통사고를 핑계로 풋볼이라는 꿈을 스스로 접었습니다. 그 선택 이면에는 자신의 초능력을 '정상적인 삶'이라는 프레임으로 무의식적으로 억압한 심리가 있었죠.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개념 방어기제(self-concept defense mechanism)와 맞닿아 있습니다. 자기 개념 방어기제란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작동 방식을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 기억보다 부정적 기억을 훨씬 선명하게 저장합니다.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합니다. 부정성 편향이란 동일한 강도의 경험이라도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더 강하게 남는 인지적 경향을 뜻합니다. 데이비드가 능력을 쉽게 긍정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나 두려움이 수십 번의 성공 가능성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 이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면 일라이저 프라이스는 유리처럼 부서지는 몸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나아갑니다.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에게서 묘한 경외감을 느꼈던 건, 그가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면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캐릭터가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약육강식 — 진짜 강자와 약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일까
<23 아이덴티티>를 처음 볼 때 저는 당연히 비스트가 강자이고 케이시가 약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은 액션이 아니라 그 전제 자체를 뒤집는 데 있습니다.
비스트는 초자연적인 신체 능력을 지녔지만, 사회적으로는 해리성 인격 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앓는 범죄자입니다. 해리성 인격 장애란 심각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해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인격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정신 장애를 말합니다. 즉 생물학적으로는 강자이지만 문명화된 사회 안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약자인 셈입니다.
반대로 케이시를 납치당한 두 소녀들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구분이 보입니다.
- 두 소녀: 납치 즉시 무턱대고 탈출을 시도하다 고립된 후 끔찍한 결말
- 케이시: 삼촌에게 오랫동안 폭력을 당하며 억압받아온 과거 탓에 위기 상황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때를 기다림
- 비스트: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적 강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역설적 구조
케이시가 살아남은 이유는 힘이 세서가 아니었습니다. 약자로 살아온 경험이 오히려 생존 감각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비스트가 케이시를 놓아준 장면은 저에게 꽤 오래 남았는데, 같은 상처를 가진 존재끼리의 무언의 연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자료에 따르면, 반복적인 외상 경험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위기 대처 능력과 공감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뇌가 재구성될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NIMH).
정체성억압 — 세상이 당신의 능력을 숨기려 한다면
<글래스>에서 스테이플 박사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층위가 하나 더 깊어집니다. 저는 처음에 그녀를 단순히 이야기를 지연시키는 방해 캐릭터로 봤는데, 다시 보니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스테이플 박사가 속한 조직의 마크는 세 잎클로버입니다. 이 상징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다수를 의미하며, 그 사이에 섞인 네 잎클로버, 즉 초능력자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사전에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순응 압력(social conformity pressure)을 시각화한 장치입니다. 사회적 순응 압력이란 집단 안에서 평균에서 벗어나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무형의 억제력으로, 개인이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숨기거나 부정하게 만드는 힘을 말합니다.
엘리야 프라이스의 자살 작전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세상에 초능력자들의 영상을 퍼뜨렸습니다. 이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억압하는 시스템에 균열을 낸 행위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서사 구조는 보통 히어로 영화에서 절대 보여주지 않는 방식입니다. 히어로가 악당을 이기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히어로를 죽이고 히어로는 그 죽음으로 이기는 방식이니까요.
개인이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과정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의 형성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반두라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기보다 도전 과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APA 심리학 사전). 데이비드가 각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케이시가 비스트에게 저항하기까지 쌓아온 용기, 이 모두가 자기 효능감이 형성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글래스>가 다소 느리고 허무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를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느린 속도 자체가 의도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려한 결말 대신 조용한 균열을 보여주는 방식, 그게 이 3부작이 2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가 아닐까요. 만약 아직 세 편을 연달아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그렇게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영화를 즐기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