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만 말하는 세상이 오면 범죄가 사라질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거짓말의 발명'을 보고 나서 그 확신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유토피아일 것 같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 세상은 꽤 잔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설적 소통만 가능한 세상,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 속 세계는 모든 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만 말합니다. 주인공 마크는 외모 때문에 데이트 상대에게 대놓고 평가를 받고, 직장에서도 해고 통보를 돌려 말하지 않고 그냥 "당신은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전달받습니다. 광고조차 "우리 제품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나마 낫습니다"라는 식이죠.
여기서 직설적 소통(Direct Communication)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직설적 소통이란 의사 전달 과정에서 완충 표현이나 사회적 수사 없이 화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커뮤니케이션 학계에서는 이를 저맥락 커뮤니케이션(Low-context Communication)이라고도 부릅니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이란 문화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의사소통 방식 중 하나로, 말속에 숨은 뜻이나 맥락 없이 언어 자체에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이나 북유럽 문화권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이런 직설적인 말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 회의 자리에서 상사가 제 기획안을 보자마자 "이건 아무 의미 없어요"라고 했을 때, 저는 다음 달 내내 새 기획을 내놓는 것 자체를 주저했습니다.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보다, 그 말이 도전 의식을 꺾어버린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저하로 설명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하며, 이 믿음이 낮아지면 사람은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언어 피드백이 반복될 경우 수행 능력보다 수행 의지가 먼저 무너진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 생각에 거짓말 없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건 범죄가 아니라 도전입니다.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마크가 유일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어머니에게 사후세계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를 건넨 것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그 장면 하나가 다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 속 세계에서 범죄는 확실히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 대신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쉽게 무감각해지고 냉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그게 오히려 더 무서운 세상이라고 봅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기, 협박, 위증 등 언어 기반 범죄는 구조적으로 소멸
- 허위 광고, 가짜 뉴스 등 정보 왜곡 행위 불가능
- 타인의 감정을 배려한 완곡 표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
- 자기 보호를 위한 표현 전략(핑계, 변명)도 사라짐
- 도전과 창의성을 북돋는 격려성 발언의 효과 소멸
선의의 거짓말이 사회에서 실제로 하는 역할
영화에서 마크가 발명한 거짓말은 처음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였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어머니에게 "죽고 나서도 좋은 곳에 간다"라고 말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이게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선의의 거짓말이란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적 안정이나 심리적 보호를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학술적으로는 친사회적 거짓말(Prosocial Decep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친사회적 거짓말이란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조작하는 행위로,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판단과 맥락에 따라 그 윤리적 위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미묘한 영역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후배가 처음 낸 아이디어가 영 아닐 때 "이 방향으로 조금 더 다듬어보면 좋겠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100% 사실만 말한 건 아니지만, 그 후배는 다음번에 훨씬 나은 결과물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이건 별로예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연구에서는 부정적 피드백보다 긍정적 방향을 제시하는 피드백을 받은 집단이 과제 지속 의지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면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였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이걸 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단순한 감정 배려를 넘어서, 실제 퍼포먼스에도 영향을 준다는 게 수치로 확인된 셈입니다.
물론 거짓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범죄에 쓰이는 거짓말, 상대를 이용하기 위한 거짓말은 분명히 해악이 큽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말 전체를 하나의 잣대로 묶어버리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목적과 맥락이 다른 거짓말을 같은 선상에 두고 판단하는 건, 칼을 음식 자르는 데 쓰든 남을 해치는 데 쓰든 같은 죄라고 보는 것과 비슷한 논리 아닐까요.
영화 말미에서 마크가 애나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그게 오히려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계기가 된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 진심 어린 진실이 관계의 토대가 된다는 걸 영화는 꽤 정직하게 보여줬다고 봅니다.
정리하면, 진실만 말하는 세상이 범죄를 없앨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도전과 위로도 함께 앗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이 관계를 유지하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데는 진실과 선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영화 '거짓말의 발명'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살면서 진실만 말하는 게 늘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말 한마디가, 팩트보다 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선의의 거짓말 덕분에 여기까지 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쯤은 자신이 받았던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배려였는지 되돌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