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곡성 (제작과정, 로케이션, 오컬트)

by orangegold8 2026. 4. 29.

영화 곡성

 

 

680만 관객. 2016년 한국 오컬트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극장에서 '무언가에 낚인' 숫자입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는데, 한 번 봐서는 도통 이해가 안 돼서 결국 세 번을 더 봤습니다. 볼 때마다 뭔가 다른 게 보이는 영화가 또 있던가 싶을 정도였죠. 그 치밀함의 정체를 촬영 현장에서 하나씩 뜯어보면, 나홍진 감독이 얼마나 집요하게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제작과정: 불편함을 '설계'한 현장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꺼내야 할 단어는 로케이션 헌팅(location hunting)입니다. 여기서 로케이션 헌팅이란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실제 촬영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전 제작 과정을 의미합니다. 나홍진 감독 팀은 해남 두륜산 같은 산속 장면 하나를 위해 6개월 동안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세트에서는 절대로 재현할 수 없는 공기, 그 불쾌한 실재감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거죠.

현장의 집착은 세트 안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종부의 집 내부는 구조가 너무 좁아 조명 장비를 제대로 세팅할 수 없었고, 그 탓에 화면이 전반적으로 어둡게 나왔습니다. 보통이라면 재촬영이나 보정을 고민할 상황인데, 오히려 그 어두움이 리얼리티를 살렸다는 평가가 현장에서 나왔습니다. 저도 처음 이 장면들을 볼 때 왜 이렇게 화질이 낮게 느껴지나 싶었는데, 그게 전부 의도된 밀도였던 겁니다.

소품과 세트 작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술팀은 외지인의 제단에 올라갈 사진들을 만들기 위해 보조 출연자를 직접 섭외해 의상을 입히고 한 장 한 장 촬영해 인화했습니다. 집 자체를 세팅하는 시간보다 그 사진들을 준비하는 데 더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사진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이 채 몇 초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그 디테일이 전체 장면의 공포를 완성하고 있었던 거죠. 제작 현장에서 이 정도의 디테일이 가능했던 건 나홍진 감독의 미장센(mise-en-scène) 철학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세트를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영화에서 미장센은 공포를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만드는 핵심 도구였습니다.

이 영화의 현장 제작 방식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넓은 풍경의 비 오는 장면은 실제 기상 조건을 기다려 촬영
  • 세트가 필요한 장면도 실제 로케이션과 연결이 어색하지 않도록 동일하게 재현
  • 구더기와 냄새까지 실제로 재현한 현장 세팅
  • 더미 대신 실제 배우가 시체 역을 직접 연기

로케이션: 전국을 헤맨 6개월의 기록

이 영화가 '곡성'이라는 전라남도 지명을 제목으로 쓰고 있지만, 실제 촬영지는 전국에 걸쳐 있습니다. 종부의 집은 전라도에 맞는 가옥 구조를 찾지 못해 경남 함양에서 촬영했고, 겨울 설경 장면은 전북 장수군에서 3개월에 걸쳐 찍었습니다. 폭포 장면은 전라도에서 아예 찾을 수 없어 강원도 철원의 매월대 폭포까지 이동했고, 의료팀과 구급차까지 대기시킨 상태에서 촬영했습니다.

제가 전남과 경남 지역을 직접 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그 지역 산간 마을에는 실제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서 연고 없는 노인이 폐가를 고쳐 들어왔다는 이야기, 그 이후 마을 가축이 이상해지고 청년들이 앓기 시작했다는 구전이 지금도 전해집니다. 나홍진 감독이 이런 토속적 공포의 질감을 화면에 담고 싶어 했다는 게 로케이션 선택에서도 분명히 보입니다.

한국의 무속 신앙은 학술적으로도 민속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분류하는 굿의 종류만 해도 지역별로 수십 가지에 달하며,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일광의 굿 장면은 실제 무속인들의 행위 하나하나를 고증해 재현한 것입니다(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황정민 배우가 실제 무속인을 따라다니며 동작의 순서까지 노트로 정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 어디서 오는지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촬영지 '곡성군' 입장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처음 제작 협조를 구할 때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어 제목의 한자 뜻을 바꿨지만, 영화가 흥행한 이후 곡성 장미 축제 관광객이 두세 배 늘었습니다. 지역 브랜딩(regional branding) 효과가 발생한 셈인데, 지역 브랜딩이란 특정 장소가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인지도와 방문 수요를 획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 속 외지인의 집이 있던 폐가 터도 관광지가 됐다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그곳에 굳이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오컬트: 감독이 설계한 '믿음'의 함정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물과 다른 이유는 오컬트(occult) 서사 구조 때문입니다. 오컬트란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비주의적 요소를 다루는 장르로, 단순한 귀신 이야기와 달리 종교적·철학적 질문을 함께 내포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샤머니즘, 무속신앙 등 거의 모든 종교의 성직자를 직접 만나 신의 존재와 선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취재가 영화 전반의 종교적 상징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영화의 핵심 구조는 서사적 모호성(narrative ambiguity)에 있습니다. 서사적 모호성이란 영화가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고 관객이 각자의 해석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서사 전략입니다. 이 때문에 "외지인이 악마인가", "일광이 선인인가 악인인가"에 대한 해석이 관객마다 다르고, 배우들조차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누가 나쁜 놈인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도 세 번을 더 봤지만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이게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는 비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걸작으로 평가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개봉 당시 곡성은 1주 차 관객 집중도와 입소문 전파 속도에서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는 영화가 관람 후 논쟁을 유발하는 구조로 설계되었고, 그 논쟁이 재관람과 입소문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불친절한 결말이 오히려 마케팅 효과를 냈다는 점은, 나홍진 감독의 모호성이 단순한 연출 취향이 아닌 계산된 전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아역 배우 김환희가 몸을 비트는 연기를 위해 6개월간 무용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사실, 쿠니무라 준 배우가 분장을 지우면 재분장에 너무 오래 걸려 분장한 채로 잠을 자고 촬영에 임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영화에서 불편함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고통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이 느끼는 공포의 질감 중 상당 부분은 배우들이 실제로 감내한 육체적 고통에서 오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결국 곡성은 '좋은 영화인가 나쁜 영화인가'보다 '당신은 무엇을 믿고 싶었는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감독은 삭제된 장면이 꽤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감독판이 나온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한 번만 본 분이라면, 두 번째 관람에서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BilYv63 sUNM? si=IAxZDyxNOUwGwbLU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