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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홍콩 느와르, 의리, 남성 서사)

by orangegold8 2026. 4. 28.

영화 영웅본색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영웅본색을 봤을 때 그냥 총 많이 나오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뭔가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이었죠.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는 걸 그때서야 실감했습니다.

홍콩 누아르가 만든 서사 문법

영웅본색(1986)은 홍콩 누아르(Hong Kong Noir)라는 장르를 사실상 정립한 작품입니다. 홍콩 누아르란 범죄 세계를 배경으로 하되, 단순한 선악 구도 대신 인물 간의 유대감과 비극적 운명을 중심에 두는 영화 문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왜인지 그들 편을 들고 싶어지는 장르입니다.

이 영화에서 송자호와 마크는 위조지폐 유통 조직에 몸담고 있습니다. 명백히 범죄자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들을 단죄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송자호가 마지막 한 건을 끝으로 손을 씻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범죄 서사의 공식처럼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다시 돌려봤을 때, 그가 아버지와 동생을 떠올리는 눈빛에서 뭔가 선한 것이 남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에서 건파이트(Gunfight) 장면을 단순한 폭력 묘사가 아닌 일종의 안무처럼 구성합니다. 건파이트란 총을 활용한 전투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카메라 앵글과 인물의 동선을 계산해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마크가 풍림각에서 적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느린 듯 정밀한 움직임, 공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폭력이면서 동시에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그냥 멋있어서가 아니라, 마크라는 인물의 내면을 몸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영웅본색이 비판받는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 제가 특히 공감한 비판은 두 가지입니다.

  • 범죄 조직의 삶을 지나치게 낭만화한다는 점. 바바리코트와 쌍권총으로 대표되는 스타일은 현실의 참혹함을 가리는 미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 여성 캐릭터가 철저히 서사의 주변부에 머문다는 점. 이 영화의 서사는 사실상 남성들 간의 유대감, 즉 브로맨스(Bromance)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브로맨스란 연인 관계가 아닌 남성 간의 강한 정서적 유대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서사의 전부이다시피 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저는 이 영화가 왜 지금도 회자되는지 이해합니다. 홍콩영화학회(Hong Kong Film Critics Society) 자료에 따르면, 영웅본색은 1986년 홍콩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홍콩 영화 산업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출처: 홍콩국제영화제). 단순히 흥행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수성을 정확히 건드렸다는 뜻입니다.

의리라는 감정, 지금도 유효한가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의리" 같은 단어가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의리를 강조하면 어딘가 구식처럼 들리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제 지인 민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민수는 10여 년 전, 믿었던 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거래처도 잃고 빚까지 떠안은 상황에서 강남의 한 포장마차에 혼자 앉아 있던 그날 밤, 그를 위협하러 온 이들 앞에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민수가 잘 나갈 때 아끼던 막내였습니다. 그 동생은 몇 달 동안 형님을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과장이 섞인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민수의 눈빛을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웅본색에서도 이 장면이 겹쳐집니다. 마크는 배 위에서 총소리를 듣고 돌아옵니다. 이미 자신이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선택을 두고, 일부에서는 비현실적인 감상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시각도 이해합니다. 현실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비현실성이 오히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라고 봅니다. 우리가 원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선택을 스크린 위에서 대신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비극적 서사를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를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 속 인물의 희생과 감정이 대신 울어줌으로써 관객이 내면의 무언가를 털어내는 경험입니다. 마크의 죽음이 그토록 오래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홍콩 누아르 장르는 1980년대 홍콩 반환(1997년 예정) 전후의 사회적 불안감과 맞물려 특별한 감수성을 형성했으며, 이는 당시 관객들에게 일종의 집단적 정서 표출 창구로 기능했다고 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감정을 담은 그릇이었다는 말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다시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눈에 들어오니까요.

영웅본색을 두고 의견은 갈립니다. 낭만적 영웅주의의 걸작이라는 평가와, 폭력과 남성 중심 서사를 미화한 시대착오적 영화라는 비판이 공존합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긴장감 속에서 이 영화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스타일 하나만 보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겁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마크가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게 맞다고 느끼는지 한번 스스로 질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질문이 이 영화의 진짜 시작점입니다.


참고: https://youtu.be/NVZQWM65 ln4? si=9 Yjf_rQSNHBReR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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