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이틀 동안 찜찜함이 가시질 않은 게 처음이었거든요. 언싱커블(Unthinkable, 2010)은 핵폭탄 테러범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을 자행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인데, 보는 내내 "이게 옳은 건가?"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불편한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더 그랬습니다.
강화심문기법, 영화가 아닌 현실의 기록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CIA의 블랙 사이트(Black Sites) 관련 자료였습니다. 블랙 사이트란 CIA가 테러 용의자를 비밀리에 감금하고 심문하던 비공개 시설을 뜻합니다. 영화 속 지하 심문실과 구조가 너무 흡사해서 오히려 섬뜩했습니다.
실제로 9/11 이후 CIA는 강화심문기법(EIT, 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법을 운용했습니다. EIT란 테러 용의자에게 심리적·신체적 압박을 가해 정보를 취득하는 심문 방식으로, 미국 정부는 이를 공식 고문이 아닌 '강화된 심문'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상 실질적으로는 고문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워터보딩(Waterboarding)입니다. 워터보딩이란 피심문자의 얼굴을 천으로 덮고 물을 부어 익사에 가까운 공포를 경험하게 하는 기법으로, 신체 손상 없이 극한의 공포를 유발하도록 설계된 방식입니다. 알카에다 고위 간부였던 아부 주바이다는 태국의 CIA 비밀 시설에서 무려 83회의 워터보딩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H'가 구사하는 수면 박탈 역시 실제 사례와 정확히 겹칩니다. 수면 박탈(Sleep Deprivation)이란 피심문자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방해해 인지 기능을 무너뜨리는 기법입니다. 며칠이 지나면 판단력과 현실 인식이 붕괴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신체 고문 못지않게 잔혹한 방식으로 평가됩니다.
2014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발표한 고문 보고서(Torture Report)에 따르면, CIA가 사용한 강화심문기법은 실질적인 정보 획득에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보고서는 고문으로 얻어낸 핵심 진술 다수가 허위 자백이거나 이미 확보된 정보와 중복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출처: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영화에서 범인이 끝까지 버티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입을 여는 장면이, 실제 보고서의 결론과 기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걸 저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고문이 결국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위험한 대목이라고 봅니다. 현실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게 데이터로 입증됐는데, 영화는 관객에게 "그래도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여지를 남기거든요.
시한폭탄 시나리오가 던지는 공리주의의 함정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흔들리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폭탄이 곧 터진다"는 설정, 즉 시한폭탄 시나리오(Ticking Time Bomb Scenario)가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시한폭탄 시나리오란 극도로 촉박한 시간 안에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 예외적인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묻는 사고 실험으로, 철학과 국제법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던 개념입니다.
이 설정이 교묘한 이유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논리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적 기준으로 삼는 윤리 이론으로, 수백만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는 것이 '옳다'는 계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고문은 도구가 아니라 '필요악'이 됩니다.
반대편에는 의무론적 윤리학(Deontological Ethics)이 있습니다. 의무론이란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체계로, 칸트 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FBI 요원 브로디가 H의 방식에 끝까지 저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에게 고문은 효과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금지된 행위인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두 입장 중 어느 한쪽을 단순히 '악당'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H는 분명히 잔혹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브로디는 분명히 옳지만, 그녀의 원칙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영화는 가차 없이 보여줍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여기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거대한 악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명령에 따른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실현된다는 이론입니다. 영화 속에서 처음에 망설이던 관계자들이 점차 고문에 무감각해지는 장면은 이 개념을 정확히 시각화하고 있다고 저는 봤습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시한폭탄 시나리오 자체가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 논리가 고문을 정당화하는 수사적 도구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국제앰네스티). 영화가 설정한 극단적 조건 자체가 이미 일종의 조작된 전제라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관객은 이미 영화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된 것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단의 비윤리성이 목적의 정당성으로 상쇄될 수 있는가
- 고문으로 얻은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가
- 문명적 가치는 위기 앞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 우리는 괴물을 막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결국 언싱커블은 답을 주지 않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틀 동안 찜찜했던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영화가 "이건 나쁜 짓이야"라고 선을 그어줬다면 차라리 편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 스스로 선을 긋게 만들고, 그 선이 생각보다 쉽게 움직인다는 걸 보여줍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작품을 찾는다면, 한 번쯤 정면으로 마주해 볼 만한 작품입니다. 단,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엔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