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극장에서 엔드게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히어로 영화에 그 정도로 감정이 실릴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토니 스타크가 마지막 순간에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을 때,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습니다. 11년이라는 시간이 한 장면에 압축된 느낌이었습니다.
인피니티 사가가 우리에게 남긴 것
MCU, 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란 마블 스튜디오가 2008년 아이언맨 1편을 시작으로 22편에 걸쳐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한 영화 시리즈를 뜻합니다. 여기서 인피니티 사가(Infinity Saga)란 타노스와의 대결을 중심축으로 한 1~3 페이즈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라인으로,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그 최종 종착지였습니다.
제가 처음 아이언맨을 본 건 대학교 때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액션 영화 하나 보는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블 개봉일을 챙기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히어로를 동경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 히어로들이 짊어진 무게에 공감하게 되더군요. 어벤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이 영화가 남긴 감동의 핵심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오랫동안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경험을 스크린을 통해 선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저스, 어셈블"을 외치는 장면에서 제가 왜 소름이 돋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11년 치의 기억이 한 문장에 실려 있었던 겁니다.
사실 어떤 분야에서든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이 결실을 맺는 순간은 감동적입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 한 조직 안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팀 전체를 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양자역학 방정식을 혼자 풀어내는 장면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영웅적인 결말보다, 그 과정을 납득할 수 있어야 감동이 따라옵니다.
캐릭터 서사의 완성도, 그리고 균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된 부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마지막 서사를 고릅니다. 두 캐릭터는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언제나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토니 스타크는 마지막에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졌고, 반대로 늘 책임과 희생을 강요당하던 스티브 로저스는 마침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합니다. 이 교차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이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직접 두 번 극장에서 봤는데, 두 번째에야 비로소 이 구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감정에 휩쓸려 제대로 못 봤던 겁니다. 토니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음악을 죽이고, 대사도 없이 배우의 얼굴만 오래 비추는 연출은 웬만한 감독은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제가 보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었던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타샤와 클린트가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 서로 희생하려 싸우는 장면은 설정 자체는 이해하지만, 연출이 다소 코믹하게 흘러 무게감이 떨어졌습니다.
- 여성 히어로들이 일제히 모여 가모라 역할을 대신하는 장면은 의도는 이해하지만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전투 흐름 속에서 협력하는 방식이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 헐크의 서사는 사실상 생략되었습니다. 배너와 헐크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대사 한 줄로 처리한 것은 헐크를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 캡틴 마블은 전편을 따로 개봉하며 엄청난 역할이 있을 듯 홍보했지만, 막상 엔드게임에서의 비중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나 레이티브나 레이티브 아크(Narrative Arc)란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좋은 영화일수록 주요 캐릭터 각각의 나 레이티브 아크가 뚜렷하게 그려지는데, 엔드게임은 아이언맨과 캡틴에게는 완벽한 아크를 선사했지만 토르, 헐크, 캡틴 마블은 상대적으로 허술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에 비유하자면, 오래 함께 일한 팀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누군가는 제대로 된 마무리 기회를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빠지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그 허탈함이 어떤 건지 알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국내에서만 약 1,39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외화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 수치는 단순한 인기를 넘어, 11년 동안 마블 시리즈가 국내 관객과 맺어온 감정적 유대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쉬운 장면들이 남긴 숙제
플롯 홀(Plot Hole)이란 이야기 내부의 설정 모순이나 논리적 공백을 의미합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타임 트래블을 핵심 장치로 사용하면서 피할 수 없는 플롯 홀을 여럿 남겼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인피니티 스톤을 원래 타임라인으로 돌려놓더라도, 로키가 테서랙트를 들고 달아난 우주가 이미 분기되었고, 타노스 군대 전체가 사라진 2014년 우주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캡틴이 페기 카터와 함께 살기 위해 머문 또 다른 타임라인도 존재하게 됩니다.
멀티버스(Multiverse)란 물리학 및 SF 개념으로, 하나의 선택이나 사건을 기점으로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가 분기된다는 이론입니다. 엔드게임은 이 멀티버스를 설정 근거로 활용하면서도 그 후속 결과를 서둘러 덮어버렸습니다. 캡틴과 페기의 마지막 춤 장면이 충분히 여운을 주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그 선택이 남긴 맥락 위에 물음표가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핑거 스냅(Finger Snap), 즉 인피니티 건틀릿을 끼고 손가락을 튕겨 우주 절반의 생명을 지우거나 되살리는 행위는 단순히 없어진 사람들을 돌려놓은 것이 아니라 5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그대로 남겼습니다. 되살아난 사람들은 5년의 공백 속에 던져지게 되는 셈입니다. 형제자매 중 한 명은 사라졌다 돌아왔고, 다른 한 명은 그 5년을 그대로 살았다면 나이 역전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는 그 혼란의 입구만 열어놓고 답은 주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글로벌 박스오피스 분석 매체인 박스오피스 모조가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 시리즈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쟁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결국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완벽한 마무리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10점 만점에 저는 7점을 주고 싶습니다. 11년의 여정을 한 편으로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 불가능을 어느 정도 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그 박수가 맹목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더 솔직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제가 경험상 느낀 바입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이미 보셨다면, 한 번 더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볼 때야 비로소 보이는 장면들이 분명히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