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디즈니 실사판 알라딘을 다시 보다가 문득 '이 이야기가 그냥 동화로 끝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짓말로 신분을 속이고, 재능 하나로 인생을 뒤집은 청년의 이야기는 영화 바깥의 현실에도 실재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낭만 뒤에 불편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세계관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문화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렌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나
제가 처음 알라딘을 봤을 때는 그저 화려한 배경과 귀에 꽂히는 노래에 압도됐습니다. 아그라바라는 가상의 도시, 노을빛 사막, 거대한 궁전. 그 풍경이 실제 중동과 얼마나 다른지는 당시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그라바는 아랍, 인도, 동남아시아의 시각적 요소를 무작위로 섞어 만든 '상상 속 오리엔트'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 즉 신비롭고 이국적이지만 동시에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편견이 녹아 있는 문화적 관점을 말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1978년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한 개념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오랫동안 이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해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1992년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곡 'Arabian Nights'에는 원래 중동을 "야만적인 곳"으로 묘사하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아랍계 미국인 단체의 강력한 항의 끝에 가사가 수정됐지만, 그 문장이 수십 년간 아무 여과 없이 방영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편견은 의도적이지 않을 때 오히려 더 깊이 박힙니다. 보는 사람이 불편함 자체를 느끼지 못하니까요.
2019년 실사 영화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백인 보조 출연자들에게 갈색 분장을 했다는 폭로, 재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이 영국·인도계라는 캐스팅 논란은 이른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화이트워싱이란 특정 인종이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해당 인종 배우 대신 백인이나 문화적으로 부적절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관행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실사판이 재스민을 단순한 구출 대상이 아닌, 스스로 술탄을 꿈꾸는 인물로 재설계한 것은 분명히 진일보한 지점이었습니다.
- 1992년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 중동을 '야만적인 곳'으로 묘사해 아랍계 단체 항의 후 수정
- 악역 자파르는 전형적인 아랍계 외모, 선역 알라딘·자스민은 서구적 외모로 그려져 외모지상주의 논란
- 실사판에서 보조 출연자 갈색 분장 폭로 및 화이트워싱 비판 제기
- 반면 실사판 자스민의 주체적 서사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긍정적 요소로 평가
현실판 알라딘, 라덴 살레의 이야기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저도 모르게 "이게 실화야?"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19세기 인도네시아에 라덴 살레(Raden Saleh)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데, 그의 삶이 알라딘의 서사와 너무나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라덴 살레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청년이었습니다. 지역을 방문한 네덜란드 관료의 눈에 띄어 유럽 유학이라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영화로 치면 지니가 램프에서 튀어나온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유럽 사교계에 발을 들이면서 자신을 '자바 섬의 왕자'라고 소개했다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신분 세탁(identity fabrication), 쉽게 말해 알라딘이 알리 왕자 행세를 한 것과 같은 전략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거짓말의 결과입니다. 라덴 살레는 왕자라는 허구의 신분 덕분에 유럽 귀족 사회에서 대접을 받고, 결국 네덜란드 귀족 가문의 여성과 결혼해 실제로 궁전 같은 저택을 짓고 살았습니다. 마법 램프 없이 '재능'과 '거짓말'이라는 두 가지 도구만으로 신분 상승(social mobility)에 성공한 것입니다. 사회적 이동성, 즉 출생 신분에서 벗어나 다른 계층으로 올라서는 것을 의미하는 이 개념은 알라딘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이야기를 마냥 낭만적으로 보기엔 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속 알라딘도, 현실의 라덴 살레도 결국 거짓말이 출발점이었으니까요. 알라딘에서 지니는 "거짓으로 무언가를 더 얻으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라고 경고합니다. 라덴 살레는 그 경고를 비켜갔지만, 현실에서 신분 위장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이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알라딘이라는 이야기의 진짜 힘은 '재능이 신분을 이긴다'는 희망 서사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서사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포장될 때, 이야기의 주인공이 속한 문화는 오히려 무대 배경으로 전락합니다. 라덴 살레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그 구도를 반대로 뒤집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무대를 활용한 동양의 청년이, 서구의 규칙으로 서구를 이긴 셈이니까요.
알라딘을 다시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아름답습니다. 음악도, 비주얼도, 지니라는 캐릭터도 세대를 넘어 사랑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빌려온 것인지는 한 번쯤 물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과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번에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실사판을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원작 애니메이션과 함께 비교해서 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보는 건데, 보이는 것이 꽤 달라집니다. 그리고 라덴 살레라는 이름도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