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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으로 본 부패 시대 (연쇄살인, 공권력 부패, 범죄 동맹)

by orangegold8 2026. 4. 22.

영화 악인전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냥 액션 오락 영화겠거니 하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자꾸 옛날 뉴스 기억이 겹쳐 보이는 겁니다. 형사와 조폭 두목이 연쇄살인범을 함께 쫓는다는 설정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시대에는 저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연쇄살인범이 설쳐도 잡히지 않던 이유

영화 속 형사 태석은 분명히 유능합니다. 그런데 수사가 자꾸 막힙니다. 연쇄살인(serial homicide)이란 동일 범인이 일정한 냉각기를 두고 세 명 이상을 살해하는 범행 패턴을 뜻합니다. 여기서 냉각기란 범행과 범행 사이에 범인이 일상으로 돌아가 감정을 가라앉히는 시간으로, 범인 검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영화 속 범인이 딱 그랬습니다. 밤에만 움직이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피해자의 패턴도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범죄가 실제로 오래 미제로 남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단서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서를 제대로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도 지문, 혈흔, 발자국이 전무한 상황이 반복되는데, 당시에는 DNA 프로파일링(DNA profiling) 기술 자체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습니다. DNA 프로파일링이란 범행 현장에 남겨진 생체 시료에서 유전자 정보를 추출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기법으로, 현재는 수사의 기본 중 기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칼에 묻은 DNA를 분석해서 피해자들을 연결하는 장면이 마치 최첨단 수사처럼 묘사됩니다. 그 시대적 격차가 저는 가장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과학 수사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정비되기 전까지 미제 살인 사건 비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출처: 경찰청). 영화가 허구지만, 그 배경만큼은 현실과 꽤 맞닿아 있습니다.

공권력 부패가 범죄를 어떻게 키웠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하게 느낀 장면은 사실 연쇄살인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태석의 상관이 조폭 두목 동수에게서 뒷돈을 받으며 태석을 통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아, 이게 당시 실제 구조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불편했습니다.

공권력 부패(corruption of public authority)란 법 집행이나 행정 권한을 가진 자가 사적 이익을 위해 직권을 남용하거나 범죄 조직과 유착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잡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범죄자를 보호해 주는 구조입니다. 20~30년 전 한국에서는 이런 유착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돈과 인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백이 없으면 더 많은 피해를 입었고, 가난할수록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 점이 지금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제도적 감시 장치는 분명히 강화됐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패인식지수(CPI)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반부패 수준은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출처: 국민권익위원회).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이 마냥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형사와 조폭의 범죄 동맹, 과연 유효한가

영화의 핵심은 결국 이 지점입니다. 형사 태석과 조폭 두목 동수가 손을 잡습니다. "내 손에 잡히면 법대로 처리하고, 네 손에 잡히면 골로 간다"는 거래. 영화적으로는 통쾌한 설정이지만,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라는 논리, 영어로 표현하면 일종의 임시 연합(tactical alliance) 구조입니다. 전술적 연합이란 공통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평소에는 대립하던 두 세력이 일시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를 뜻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구조는 자주 등장합니다. 문제는 공통의 적이 사라진 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수가 재판정에서 몸에 칼자국을 보여주며 증언하는 장면은 분명히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동수도 감방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범죄로 쌓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동맹 이후 갑자기 착하게 살기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범죄 조직의 수익 구조 자체가 이미 생활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동수라는 캐릭터가 단순한 악인으로도, 단순한 영웅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완성도라고 느꼈습니다.

레트로 시대 범죄 전성기, 지금은 달라졌는가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시대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입니다. 제 경험상 그 시절 뉴스를 되돌아보면 강도, 납치, 연쇄살인, 조직폭력배 관련 사건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번했습니다. 지금도 범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시대에 비하면 체계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사회통제이론(social control theory) 관점에서 보면 범죄 발생률은 제도적 감시와 규범의 밀도와 반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통제이론이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내면의 도덕성보다 사회적 유대와 제도적 억지력 때문이라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 잡힐 가능성이 높고 처벌이 확실할수록 범죄는 줄어든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는 그 억지력 자체가 부패해 있었습니다. 잡아야 할 사람이 눈을 감아주고, 뒷돈을 받고, 오히려 피해자를 외곽으로 내몰기도 했습니다. 성실하게 살던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봤을 겁니다. 돈도 없고 백도 없었으니까요.

레트로 시대 범죄 구조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사 인프라 부재: DNA 분석, CCTV 등 과학 수사 도구가 미비해 용의자 특정에 오랜 시간 소요
  • 공권력 유착: 조직범죄와 경찰·검찰의 비공식 거래가 수사를 방해하는 구조적 문제
  • 피해 불균형: 경제적 약자일수록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환경
  • 범죄 조직의 사회 침투: 건달 조직이 유흥업소, 금융, 부동산 등 일상 경제에 깊숙이 개입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들 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구조적 부패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시절보다는 나아졌다는 것 하나는 부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악인전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화끈한 액션보다,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부패한 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살려고 버텼던 사람들.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지만, 배경 곳곳에 그 시대의 공기가 배어 있습니다. 비슷한 감각을 느껴보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단, 단순한 오락으로만 보기에는 생각거리가 꽤 남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youtu.be/bodJMoaKBDU? si=f0 opDAP5-Jf6 Yf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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