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슈퍼히어로 액션물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모비우스가 희귀 혈액병을 앓으며 치료제를 개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현실에서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희귀 혈액병, 현실에서는 어떤 삶인가
일반적으로 희귀병은 그냥 드문 병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저도 솔직히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모비우스처럼 한 달에 세 번씩 수혈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을 보고 나서, 이게 단순한 설정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귀 혈액병 중 대표적인 것이 혈우병(Hemophilia)입니다. 혈우병이란 혈액 응고에 필요한 단백질인 응고인자가 선천적으로 결핍되어 출혈이 자연적으로 멈추지 않는 유전 질환입니다. 모비우스가 앓는 병도 이처럼 혈액 자체의 기능에 결함이 생긴 형태로 묘사됩니다. 이런 병을 가진 사람은 단순한 생채기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수혈이나 응고인자 주입이 일상이 됩니다.
제 경험상, 주변에서 희귀병을 앓는 분을 직접 알게 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국내 희귀 질환 환자 수는 약 100만 명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그분들 상당수가 치료제 자체가 없어 증상 관리에만 매달리는 상황이라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희귀병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주요 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기적인 병원 입원 또는 통원 치료로 인한 일상생활 제한
- 치료제가 없거나 고가여서 경제적 부담이 과중
-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인한 고립감
- 긴급 상황 발생 시 대처 가능한 의료 인프라 접근성 부족
인공혈액 개발,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영화에서 모비우스는 노벨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인공혈액을 개발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그냥 영화적 과장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인공혈액 연구는 이미 상당히 진척된 분야입니다.
인공혈액(Artificial Blood)이란 실제 혈액의 산소 운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혈액 대용 물질을 의미합니다. 크게 퍼플루오로카본(PFC, Perfluorocarbon) 기반과 헤모글로빈 기반 산소 운반체(HBOC, Hemoglobin-Based Oxygen Carriers)로 나뉩니다. 퍼플루오로카본이란 산소를 물리적으로 용해시켜 운반하는 화합물로, 실제 적혈구 없이도 산소를 조직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모비우스가 개발한 인공혈액이 수혈 없이도 생명을 유지하게 해 줬다는 설정은 이 HBOC 또는 PFC 계열 연구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아직 완전한 혈액 대체제가 임상 승인을 받은 사례는 드뭅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도 혈액 대용품의 안전성 검증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제가 직접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를 계기로 이 분야를 찾아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학이 허구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속도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닿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임상실험의 현실, 쥐와 사람 사이의 거리
영화에서 모비우스는 흡혈박쥐 DNA와 인간 DNA를 결합한 혈청을 개발하고, 먼저 실험 쥐에게 투여한 뒤 효과를 확인합니다. 그 결과를 보고 바로 자신에게 투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여기서 솔직히 불안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임상실험은 크게 전 임상 단계와 임상 단계로 구분됩니다. 전 임상(Pre-clinical) 시험이란 인체 적용 전에 세포 또는 동물을 대상으로 약물의 독성과 효능을 먼저 검증하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실험 쥐를 쓰는 이유는 인간과 유전자 유사도가 약 85% 수준에 달해 결과를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도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지만, 쥐와 사람은 엄연히 다른 생물입니다. 전 임상에서 성공해도 인체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임상시험은 통상 다음 단계를 거칩니다.
- 1상 임상시험: 소수의 건강한 성인에게 투여해 안전성과 최적 용량을 탐색
- 2상 임상시험: 소수의 환자군을 대상으로 효능과 부작용을 확인
- 3상 임상시험: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 최종 효능 검증
- 시판 후 조사(PMS, Post-Marketing Surveillance): 허가 후 장기 부작용을 지속 모니터링
모비우스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에게 직접 투여한 것은, 절박함의 표현인 동시에 실제 연구 윤리의 관점에서는 명백한 위반입니다. 물론 영화적 장치이지만, 현실에서도 일부 희귀병 환자들이 선택지가 없어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의존하는 상황이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치료제의 가격,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영화에서 모비우스는 인공혈액을 개발해 전 세계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노벨상까지 받을 만큼 인류에 기여한 연구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인공혈액, 과연 가난한 사람도 맞을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건 영화 밖 현실에서도 똑같이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실제로 희귀 질환 치료제 중 일부는 연간 치료 비용이 수억 원을 넘기도 합니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 치료제인 졸겐스마(Zolgensma)의 경우 1회 투여 비용이 약 25억 원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 중 하나로 꼽힙니다. 척수성 근위축증이란 운동 신경세포가 퇴화하면서 근육이 점차 약해지는 희귀 유전 질환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습니다.
제 경험상,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주변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치료제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고 어떤 것은 비급여로 남아, 경제적 여건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치료가 달라지는 현실이 있습니다. 연구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약값이 높아지는 구조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환자 입장에서 납득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연구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좋은 치료제가 나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그 치료제가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비우스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인공혈액이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사람'에게 열린 것이었는지, 영화는 그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불편한 여백일지도 모릅니다.
모비우스를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뛰어난 과학자가 자신의 병을 고치려는 절박함이 결국 더 큰 비극을 만들어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보다 치료제를 둘러싼 현실, 즉 누가 연구를 하고 누가 그 혜택을 받는가 하는 부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희귀병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주변의 희귀 질환 지원 제도나 건강보험 급여 현황을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