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녀 (촬영비화, 액션연출, 김다미)

by orangegold8 2026. 5. 3.

영화 마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 마녀를 볼 때 전반부에서 한 번 졸 뻔했습니다. 시골 목장 소녀의 일상이 꽤 길게 이어지거든요. 그런데 중반부 이후 자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전 자리에서 등을 똑바로 세웠습니다. 그 눈빛 하나가 영화 전체를 뒤집어 놓는 경험, 쉽게 오지 않습니다.

촬영비화로 읽는 박훈정 감독의 연출 전략

영화 마녀(2018)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술적 공정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CG(컴퓨터 그래픽스)의 범위였습니다. 여기서 CG란 디지털 방식으로 실제 촬영 화면에 가상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마녀는 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님에도 비가 내리는 창문의 빗방울, 창틀에 맺힌 습기, 심지어 화면 안쪽 도시 배경까지 전부 CG로 채워 넣었습니다. 파주 외곽의 허허벌판에 서울 도심 스카이라인을 통째로 심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촬영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들도 단순한 뒷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인체 실험 사진들은 실제 사진을 구매해 사용했고, 배우들이 사용하는 총기 액션 중 일부는 물리적으로 재현이 불가능해 손으로 소품을 직접 조작한 뒤 CG로 손을 지웠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세트, 소품의 총체를 의미하는 영화 연출 용어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이 미장센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실제 로케이션과 세트, CG를 구분 없이 섞어 씁니다. 광천역, 대진대학교 복도, 비스타 워커힐 호텔, 구례 지리산 인근 목장이 혼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촬영 현장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배우들이 감수해야 했던 물리적 조건입니다. 피가 너무 많이 뿌려져 배우가 미끄러워 걷기 힘들었던 씬, 해 뜨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재촬영을 강행한 야외 장면, 영하의 날씨에 얇은 옷차림으로 얼어붙은 땅 위에서 촬영해야 했던 액션 시퀀스까지, 이 영화의 밀도는 제작 환경의 고통과 비례합니다. 박훈정 감독은 평화주의자라 피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 영화에서 가장 피를 많이 쓰는 감독이 됐다는 아이러니가 꽤 재미있습니다.

마녀에서 눈여겨봐야 할 핵심 연출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메라 워킹: 자윤이 연기 속으로 사라진 후 촬영감독이 실제로 배우를 찾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움직여 현장감을 극대화한 씬
  • CG 활용 범위: 빗방울, 도시 배경, 불길, 귀공자의 벽 타기 장면 등 제작비 대비 이례적으로 넓은 범위
  • 애드리브의 비율: 귀공자의 손톱 깨무는 버릇, 최우식 배우의 '메롱' 등 캐릭터 디테일 상당수가 현장에서 즉흥으로 만들어짐
  • 편집 결정: 원본 러닝타임이 약 3시간에 달해 1시간가량을 덜어냈으며, 자윤과 명희의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신이 잔인하다는 이유로 편집될 뻔하기도 함

액션 연출과 김다미라는 배우의 발견

솔직히 저는 김다미라는 이름을 마녀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배우가 처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서사적 전환점 이후의 눈빛, 즉 순진한 고등학생에서 냉혹한 실험체로 돌아오는 그 경계에서의 연기는 신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영화 연출에서 내러티브 미스디렉션(narrative misdirection)이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이는 관객이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나 오해를 유도하는 서사 전략을 말합니다. 마녀는 이 기법을 자윤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내재시킵니다. 자윤은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 그리고 관객까지 끊임없이 속입니다. 총을 떨어뜨리고 피를 보며 놀라는 척하는 장면조차 이를 지켜보고 있을 귀공자를 의식한 퍼포먼스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을 때, 전반부의 사소한 장면들이 전부 복선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서야 이 영화의 설계가 얼마나 촘촘한지를 실감했습니다.

한국 장르영화에서 여성 주연의 액션 시퀀스가 이 정도 밀도로 구현된 사례는 2018년 기준으로 매우 드물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개봉 상업영화 중 여성이 단독 주연을 맡은 액션 장르 작품은 전체의 5% 미만이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마녀는 이 좁은 시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면서 후속 편 제작의 근거를 만들어냈습니다.

액션의 타격감 측면에서도 짚어볼 게 있습니다. 영화에서 사용된 와이어 액션(wire action), 즉 배우를 와이어로 매달아 공중 이동이나 과장된 신체 동작을 구현하는 촬영 기법은 마녀에서는 최소화되었습니다. 대신 실제 격투 동선에 가까운 안무를 기반으로 CG 보정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액션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비평 측면에서 한 가지 저도 동의하는 지점은, 전반부의 빌드업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입니다.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 가까이를 일상 묘사에 할애하는 건 장르 영화의 호흡으로는 다소 무거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긴 전반부가 있었기에, 자윤의 반전이 강렬하게 작동한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박훈정 감독의 대사 스타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중2병적 감성이 다소 과하다는 비판은 저도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 오글거림이 오히려 이 영화의 장르적 개성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영상자료원은 마녀를 2010년대 한국 장르영화의 주요 성취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마녀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예정되어 있고, 결말부에 등장하는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과 새로운 실험체들의 존재는 2편의 스케일이 훨씬 커질 것임을 예고합니다. 제 개인적인 기대는 미스터 최처럼 철저히 억제된 캐릭터가 2편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느냐입니다. 1세대 실험체라는 설정은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채 1편이 끝났고, 그 여백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마녀를 처음 봤을 때 전반부에서 졸 뻔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졸음이 박훈정 감독의 계산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관객을 충분히 방심시킨 뒤 뒤통수를 치는 구조, 그게 이 영화의 진짜 장르적 쾌감입니다. 아직 마녀를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전반부의 느린 호흡을 참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인내가 헛되지 않습니다.


참고: https://youtu.be/_EWIe0 PjQ6 g? si=bx2 gaL_7_Qm7 qQZG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